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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

쭈니루 2014. 7. 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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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을 조사하는 설문조사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세종대왕님을 1위로 꼽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순신 장군을 가장 존경합니다.

 

물론, 매우 당연히도 세종대왕님을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보기엔 세종대왕님이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에 환경적 요인이 상당히 좋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그런 환경적 요인의 도움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너무도 큰 업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뭐, 블로그 성격이랑 좀 안 맞지만, 오늘은 제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

 

 

첫 번째 이유 입니다.

 

 

일반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왜 위대하냐고 물어보면, 23전 전승이라는 승전에 대한 이야기만을 합니다.
물론 어마어마한 일이죠. ‘23번을 싸워서 23번을 이겼다.’ 그 중에는 세계 해전 역사에 길이 남을 대승이 3번이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 이런 전공을 가진 장수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균에 의해 칠전량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수군의 대부분이 괴멸을 한 후, 선조는 수군을 육군으로 복속 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자신이 한 번이라도 패전을 하면 그 때 수군을 육군으로 복속 시키겠으니, 당장 수군을 폐지하는 것은 보류해 달라고 주장하여, 수군을 유지시키게 됩니다.

 

 

자, 그럼 이 수군의 유지가, 왜 제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되는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을 통과하여, 나름 대승이라고 불릴 수 있는 승리, 또는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친 승리가 몇 번 있었습니다.

평양성 전투 (평양), 행주 대첩 (경기도 고양), 진주 대첩 (진주) 등이 그러한데요. 중요한 점은 이 승리들이 모두 한반도의 서쪽에서 이루어진 승리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보급의 문제였습니다.

 


한반도의 동쪽, 즉, 경상도를 통과하여 강원도와 함경도를 통과한 왜군들은 보급이 비교적 원활했습니다. 왜 본토에서 배로 한반도의 동쪽 해안, 전투지역에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놓으면, 육로로의 보급은 아주 짧은 거리만 이동하면 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한반도의 서쪽에서 전투를 하는 왜군에게 보급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이유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서쪽으로 해안을 따라 보급을 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방법은, 부산포에 보급품을 내려놓고, 육로로 보급품을 이동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요. 이것이 매우 힘들 일이었던 것입니다.
배 한 척으로 옮길 수 있는 양의 보급품을 육로로 옮기기 위해서는 수 백 마리의 소와 달구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기간 또한 배로 하루 이틀이면 충분한 거리를, 육로로는 십 수일 또는 수십여 일이 걸려야 보급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 보급품을 호위하기 위한 수송부대도 상당히 필요하다는 것조차 부대운영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때 활약했던 분들이 홍의장군 곽재우 등을 비롯한 의병들과 패전하고 남은 잔여 정규군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실제 정규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것 보다는 이런 보급부대를 기습하여, 보급품을 빼앗거나 최소한 태워버림으로써, 보급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던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진주 대첩의 경우, 당시 왜군은 7일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전투를 벌였다고 합니다. 김시민 장군의 통솔력 아래, 민관군이 하나가 되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운 것이 엄청난 수의 적과의 전투를 승리로 만든 것은 사실이나, 그 저변에는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장기화되자, 왜 본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으로 넘어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으로 넘어왔다면,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넘어올 준비를 완벽히 해 놓고도, 그가 넘어오지 못한 이유는 바로, 조선 수군, 아니 이순신 장군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넘어오다가 죽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지요.

 

 

 

수군의 존재 자체가 전쟁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이순신 장군이 수군을 지켜냈던 것은, 단지 해안가 쪽에서의 몇 번의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임진왜란-정유재란 그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 임진왜란 승전도<임진왜란 격전지>

 

 

제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두 번째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반복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 전승이라는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연히 얻어진 결과물이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들을 독려하여,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이기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첩보와 정찰로 적의 움직임과 목적을 완전히 파악하고, 전략과 전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완벽하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정확하게 공격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명량 대첩의 경우, 약간은 예외)
만약 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경우는 전투를 나서지 않았습니다.

 

자, 그러면 반대로, 왜군이 한산도를 공격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당시 조선군은 활을 중심으로 하는 무예기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병전, 즉 칼싸움에 있어서는 일본군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배 한두 척 정도만이라도 한산도에 상륙했다면, 아마도 조선수군은 괴멸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 숨어있습니다.

 

 

한산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왜군들이 한산도를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저처럼 전쟁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생각해 내는 것을, 전장에서 일생을 보낸 나름 명장들이 생각해내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산도 근처에서 왜군과의 전투 자체가 없었다는 것은, 감히 왜군들이 한산도를 침범할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요새를 만들어 두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완벽한 전술을 짜서, 완벽한 시점에 나가, 완벽히 무찌르고 다시 돌아온다.’
23전 23승의 저변에는, 완벽하게 요새화 된 안전한 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 전투<십경도 - 부산포 해전>

 

 

제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세 번째 이유는...

 


이 모든 것을 중앙 정부의 지원이 없이, 거의 독자적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상에도 몇 명의 전쟁 영웅들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영토를 역사상 최대의 영토로 만든 광개토태왕, 수 양재의 수 백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 마찬가지로 거란족 대군의 침입을 막아낸 강감찬 장군 등... 이 분들도 모두 위대한 영웅이며, 명장들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이 분들은, 크던 작던 간에 국가의 절대적 지원 하에서 전쟁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이순신 장군은, 거의 순수하게 전라좌수영의 힘만으로, 전선을 건조하고, 한산도를 요새화 했으며, 전쟁 중에 난민이 된 백성들의 받아들여 먹여주고 재워 주었으며, 이 모든 것에 대해 중앙정부의 지원은커녕, 꺼꾸로 세금까지 누락되는 일 없이 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전쟁 역사 속에 길이 남을 승전과, 전쟁의 향방을 가르는 모든 것들을, 이순신 장군 혼자의 힘으로 해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존경하는 불멸의 이순신 장군

 

 

제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이유를 적어보았습니다. 적다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졌네요.


뭐, 세종대왕님이나 다른 분들을 더 존경하시는 분들에게, ‘이순신 장군을 더 존경해야 한다’ 라는 의미로 이 글을 적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순신 장군님을 그저 ‘전투를 잘하는 장수’ 정도로 생각하셨다면, ‘조금 더 위대한 점이 있었다.’ 정도를 알려드리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 영화 '명량'과 역사상 실제 전투 ☜ 포스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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